식생활
사찰에서 공양할 때 읊조리는 오관게(五觀偈)의 한 구절처럼, 음식은 욕구의 대상이 아니라 여윈 육신을 지탱하기 위한 일종의 수단으로 정의되어있다.
이는 불가에서의 생활 자체가 수행이기 때문에 식생활 역시 수행의 일부로 인식된다.‘식(食)’이란 산스크리트어로 아하라(Ahara)로, ‘끌어당겨 보존해간다’라는 의미로 몸을 존재하는 상태로 유지해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이유로 먹기 위한 생산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탁발(托鉢)을 통해서 얻어지는 음식의 섭취가 식생활의 전부였다. 부처님 당시는 탁발에 의해서 얻어지는 음식을 가리지 않고 먹는 것을 권하였으며, 말린 밥, 콩과 보리를 섞어 지은 밥, 미숫가루, 고기, 떡 등이 주로 주식이었으며, 부식으로는 식물의 가지, 잎사귀, 꽃과 과일, 우유, 꿀 등이었다. 하지만, 대승불교의 발달로 마늘·파·부추·달래·흥거의 오신채(五辛採)를 삼갈 것을 권하고, 술, 고기는 성도(成道)를가로막는다하여 점차 소식위주의 식생활로 바뀌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왕실에 의해 불교가 수용되었으므로 궁중음식과 사찰음식이 어우러져 발달하였으나 이후 사찰음식은 종교적 상황으로 인해 구전으로 전해졌으므로 사찰이나 지역마다 조리법이 다르나 공통적으로 고기와 오신채를 사용하지 않는다. 신라시대 정월 대보름에 찰밥과 약과, 유밀과 등을 불전에 올리던 육법공양(六法供養)이 한과로 발전하였고, 고려시대에는 상추쌈, 약밥, 약과 등이 발전하여 다른 나라로 퍼져나갔다. 조선시대 이후부터는 지역이나 사찰마다 고유의 음식을 갖게 되었다.
음식을 얻는 방법을 탁발이라고 하는데, 흔히 걸식이라고도 한다. 탁발이란 산스크리트어로 핀다파타(賓茶波多, Pindapata)를 번역한 것이다. 이는 가루나 쌀로 둥글게 만든 음식, 주먹밥을 뜻하는 핀다라는 단어와 ‘떨어진다’라는 의미인 파타의 결합어로 주먹밥을 발우 안에 떨어뜨린다는 뜻이다. 한자로 번역된 탁발은 ‘발우에 의탁한다’는 뜻으로 불교고단의 중요한 생활방식이다. 어떠한 생산활동에도 참여할 수 없는 수행자들의 현실적 필요와 청정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라는 수행 방편의 의미인 것이다. 후일 중국 선종(禪宗)에서는 불교 선종에서 지켜야 할 수행승의 규칙인 청규(淸規)가 제정되어 걸식의 의미는 희소해졌으나 발우공양은 전승되고 있다.
탁발을 하거나 탁발을 통해 얻은 음식을 먹는 그릇이 바로 발우이다. 발우(鉢盂)는 스님들이 사찰에서 사용하는 그릇을 총칭하며, 발(鉢)은 산스크리트어로 발다라(鉢多羅, patra)의 약칭이고 우(盂)는 한자로 그릇이라는 뜻이다. 보통 밥, 국, 청수, 반찬을 담게끔 4-6개의 그릇으로 이루어지며, 모두 큰 그릇에 포개지도록 되어있으며, 발우보로 싸뒀다가 공양시 펼쳐서 공양한다.
발우공양이란 큰 방에서 식당작법(食堂作法)에 따라 공양을 하는 것으로,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수행의 한 과정이므로 법공양이라고 한다. 고려시대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1205)에서는 “공양할 때, 마시고 먹는 소리를 내지 말며, 잡고 놓을 때는 반드시 조심하고 얼굴을 들고 돌아보지 말며, 맛있고 맛없는 것을 좋아하거나 싫어하지 말며, 묵묵히 말하지 말며, 잡념이 일어나지 않게 하며, 밥을 먹는 것이 다만 몸이 마르는 것을 치료하여 도업을 이루기 위함인 줄 알아야하며, 반야심경을 염하되 삼륜이 청정함을 관하며 도용을 어기지 말라”고 하여 공양이 곧 수행임을 강조하였다.
발우공양에 담겨있는 불교의 수행정신은 첫째, 음식에 담겨있는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와 시주의 은덕, 음식의 재료가 되는 생명에 대해 감사하고, 두 번째로는 음식의 질과 양에 따른 차별로 인한 음식의 은혜를 망각함을 반성하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수행자가 음식을 먹는 이유는 계(戒)·정(定)·혜(慧) 삼학(三學)을 통해 삼독(三毒)을 없애기 위함이며, 네 번째로는 수행정진을 위한 육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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